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 FC (문단 편집) == 역사 == 뿌리는 2001년에 만들어진 [[다음 카페]]인 '서울시민구단 서포터 모임'이며, 이후 [[붉은악마]] 서울지부 등도 협력하여 창단을 도왔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여파로 당시 서울 시민들의 축구단을 열망하는 의지는 많이 있었으나, [[크고 아름다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민 구단으로써는 손 쓸 도리가 없는 '''250억 원'''을 경기장 '''건설 분담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딱 한 번만 내면 되는 돈이지만 굳이 이 돈을 내고 [[서울특별시]]에 축구단을 들여놓고 싶어하는 기업도 없었고 [[서울특별시]] 역시 직접 구단을 운영할 생각은 없었다.[* 과거 서울시에서 운영했던 [[서울시청 축구단]]도 말이 서울시청이지 실상은 [[서울시립대학교]]에 체육 특기생으로 진학하는 선수들로 모아 구성한 팀이었다. 체육특기자 제도 개정으로 1999년 입학생을 마지막으로 체육계열 학과가 없는 대학은 체육 특기생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선수 수급이 끊어졌다. 1999년 바로 해체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으나 기존 프로 및 실업 팀에서 외면당했던 선수들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2003년까지 억지로 연명시키다 여자축구팀을 새로 창설하면서 정리했다.]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없자, [[대한축구협회]]는 [[서울특별시]]가 250억원 중 100억원을 대납하고 [[서울특별시]]에 2개 구단이 연고한다는 전제로 건설 분담금을 '''75억원'''까지 낮춘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시행 당시 가장 격렬하게 반발했던 [[LG그룹]]은 75억 원이면 가격 대비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단행, [[FC 서울]]이 된다. 당시 LG그룹과의 합의 아래 분리작업을 진행하던 [[GS|GS그룹]] 수뇌부는 모기업의 인지도를 끌어 올리는데 75억 가량의 투자는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법인을 설립하고 [[2007년]] 아마리그 최강이라 불리는 진서울 FC와 굿프랜드 FC가 하나로 뭉쳐[* 사실 국내 축구팀 전체를 통틀어 정말로 '''유나이티드'''가 된 최초 사례다. 참고로 아직도 그냥 유나이티드를 '''멋'''으로 달고 있는 팀들이 대부분이다. 유럽도 비슷하다. 예를 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 [[K리그]]는 아니지만 2007년에 공식 출범된 [[K3리그]]에 홈구장은 [[서울올림픽주경기장]]으로 참가했다. 원년 감독은 1992년 K리그 득점왕 출신의 [[임근재]]가 맡았고, [[우제원]]과 [[제용삼]] 등 쟁쟁한 실력을 가진 과거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원년 K3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K3리그 출범 당시 가장 기대를 모았던 팀으로, 창단 전부터 자신들이 '진정한 서울 시민의 구단'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열심히 홍보했다. 창단 원년에는 [[나이키]]의 후원을 받았으며 메인 스폰서는 [[KT]]였을 정도로 지원도 괜찮았지만 이후 열악한 K3리그 환경에서 나름 선전해 주었으나 K3리그에서 부진하여 적자에 허덕이며 관중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여러 대관료 싼 구장을 전전하며 간신히 유지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2011년부터는 [[노원구]]와 협약을 맺고 [[노원마들스타디움]]을 무상으로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어 유랑민 신세는 이제 면할 듯하다. [[FC 서울]]과는 서유 쪽에서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편면적 라이벌 관계'''. 경기 한 번 해 본적 없는, 1부 리그에서 상위권 팀과 3~4부 리그를 오가는 세미프로 팀 사이에 대등한 라이벌리가 생길 리가 없다. 창단 원년에는 일부 몰지각한 [[FC 서울]]의 중고등학생 팬이 경기 도중 방해를 하는 등 견제가 있기는 했으나 그때 잠깐이었다. 2014년 새로운 서울 연고 프로팀으로 [[서울 이랜드 FC]]가 창단되었고 1부에선 전북, 수원, 포항과의 라이벌리가 심화되면서 서울 쪽에선 신경 끈 지 오래다. [[서울특별시청]]에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 2011년부터 해치 서울(HAECHI SEOUL) 마크를 유니폼을 비롯한 홍보에 사용한다. 이는 이전까지 [[서울특별시]]에서 [[챌린저스 리그]] 팀들을 공식적인 서울 스포츠 팀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점에 비하여 상당히 입지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2012 시즌부터는 아예 서울시의 슬로건인 희망서울 로고가 유니폼 전면에 삽입되었다. 2013년부터 서울특별시에서 운영하는 유아축구교실 운영을 위탁받아 10개 자치구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고등부 팀을 창설하는 등 유스부문에서부터 지역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각 자치구 및 풋살연합회 등 생활체육 단체와도 MOU를 체결하면서 생활체육 쪽 협력에도 중점을 두는 모양새다. 2013년 5월 협동조합 법인을 출범시키고 2014시즌 [[K리그 챌린지]] 진출 추진을 선언했다. 2013년 11월 기사에 의하면 스폰서 확보와 [[한국프로축구연맹]] 협의 등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서울특별시]]와의 연고 협약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11월 19일 연고 협약을 촉구하는 서포터즈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서울특별시]]의 연고 협약 거부로 [[K리그 챌린지]] 진출은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2015년 K리그 챌린지 참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이랜드그룹]]에서 프로팀 창단 및 2015년 챌린지 참가를 선언했으므로 짝수 팀 체제 유지와 더불어 '''[[K리그 챌린지]]에서만 2개의 서울 연고팀'''을 기대해 볼 수도 있었지만,[* 다만 이랜드가 사용하기로 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과거 서울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었으며 현재도 구단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는 점이 걸린다. [[효창운동장]] 등의 서울 내 다른 경기장 입주같은 대안도 있지만 인조잔디 및 경기장 시설이 문제다.] 움직임이 없어 참가가 무산되고 말았다. 2014년 12월 크레이지 풋볼, 손박사 싸커아카데미 등과 연이어 MOU협약을 체결했다. 크레이지 풋볼과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서유의 지역사회 공헌도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손박사 싸커아카데미는 선수들의 심리분석 컨설팅민 매니지먼트 부분에서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2015년 1월, [[J3리그]] 소속의 [[FC 류큐]]와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정기전 형식의 친선경기를 갖기로 합의했다. 팀의 핵심 선수였던 [[오성진(축구선수)|오성진]]이 [[청춘 FC]]에서 최종 엔트리에 들었다. 2015시즌 베스트 프런트상을 수상했다. SNS활용과 왕성했던 명예기자단 활동 등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9 시즌에 명예기자가 다시 등장하였다. 그리고 2019 시즌에 명예 기자가 다시 등장했다. 2021 시즌을 앞두고 [[2군|B팀]]을 만든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차후 [[K7리그]] 참가 또한 계획하고 있는듯 하다.[[https://n.news.naver.com/sports/kfootball/article/343/0000103822|#]][* 디비전리그 참가시 세미프로팀의 첫 B팀 사례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